재판부 "현재 전 세계 기후위기 직면…피고인들 주장 타당성 있어"

(사진 녹색당 인스타그램 갈무리)/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포스코 행사의 단상에 기습적으로 올라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던 녹색당원들이 1심 판결에서 감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이른바 '기후재판'에서 기후활동가의 손을 들어준 국내 최초의 사례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1위 기업으로,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허정인 판사는 주거침입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김영준, 문성웅, 이상현, 이은호 활동가에게 각각 벌금 100만원, 100만원, 150만원,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당초 서울중앙지법에서 1인당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한국의 기후불복종 재판 역사상 첫 승리"

4명의 활동가들은 2021년 10월 포스코가 주관하고 산업부장관이 참석한 '수소환원제철포럼' 행사에 찾아가 '기후불복종 직접행동'을 벌였다. 포스코의 생태학살을 비판하는 동시에, 산업부에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 상향과 산업계의 탄소배출 감축 책임 강화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인 2억9100만t 감축을 목표로 하며, IPCC의 권고기준은 50%다.


기후위기 대응 촉구하는 발언하다가 끌려나가는 이은호 녹색당 활동가 (사진 김영준 활동가 촬영 영상 갈무리)/뉴스펭귄

이은호·이상현 활동가가 위와 같은 내용으로 발언했다가 1분 뒤 직원에게 끌려나왔다. 현장에서 김영준 활동가는 영상을 찍고 문성웅 활동가는 미리 준비한 유인물을 배부했다. 이들은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하는 의미로 서울중앙지법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8개월이 흐른 지난 11일, 최대 200만원 감형이라는 1심 판결이 났다.

녹색당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기업의 생태학살 책임을 고발하는 직접행동의 정당성이 인정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이는 한국의 기후불복종 재판역사상 첫 승리"라고 말했다. 이어 "탄원서로 힘을 실어준 2035명의 기후시민들께 감사를 전한다"며 "인류의 생존기로에서 책임을 회피·방관하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기업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마땅한 책임을 지도록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후위기 대응 촉구하는 발언하다가 끌려나가는 문성웅 녹색당 활동가 (사진 김영준 활동가 촬영 영상 갈무리)/뉴스펭귄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은 "벌금이 많이 깎여서 기후정의 운동 열심히 하라고 상금을 받은 기분"이라며 "앞으로도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더 많이 알리고 싸워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 위원이자 기후위기기독인연대 공동대표인 김영준 활동가는 "재판부가 기후위기 현실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항소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재판부 "현재 전 세계는 기후위기 직면,
NDC 비율 높이자는 피고인들 주장 타당성 있어"

재판부는 12일 공개한 판결문에서 "현재 전 세계는 기후위기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산업화 이전 대비 1.5℃ 정도 이내로 지 온도 상승을 막지 못한다면 되돌릴 수 없는 기후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파리협정 기준이나 IPCC 보고서 등에 나온 바와 같이, NDC 비율을 조금 더 높여 기후위기에 실질적으로 대비하자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기후재판 1심에서 감형을 선고받은 문성웅, 김영준, 이은호, 이상현 녹색당 활동가들과 변호인 (사진 녹색당 페이스북 갈무리)/뉴스펭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묻자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포스코 행사장에서 기후불복종 직접행동을 하자는 의견은 김영준 활동가가 처음 제안했다. 그는 "포스코가 서울시보다 2배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시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업을 규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정부는 오히려 기업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 그 와중에 포스코가 지속가능성 보고서상까지 받는 지경이 '좀 아니지 않나' 싶어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고 전했다.

김 활동가는 "내 꿈은 텃밭 일구면서 소박하고 평범하게 사는 건데 어느 순간부터 생존에 대해 걱정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와 내 가족, 지인들이 걱정 없이 안전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외치려고 한다"고 말했다.